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혜곡 최순우 전집>에서 글들을 가져와 모은 책이다.
조금 더 쉽게 읽히는 수필집처럼 출간을 한 것 같은데, 미술에 문외한인 독자 입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교과서(지식의 기준이라는 의미에서)를 읽은 느낌이다.
6~70년대에 쓰인 글들이 많은데, 오늘날 읽어도 별 어색함이 없다.
한국문화를 이끄는 사람들에 대한 글이나, 작품들에 대한 글들도 그렇지만,
한국미에 대한 혜곡의 생각들이 인상적이다.(글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을 아울러 짚어내는 것이 좋은 근거가 되기도 했지만, 독서 후 내가 평소 부분부분 생각하던 것들이 좀 이어져서 집중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 한국인은 바라보는 즐거움을 아름다움의 으뜸으로 삼고서 모든 배포를 차려 온 것 같다. 즉 손으로 쓰다듬고 가까이서 돋보기를 들이대야 하는, 그리고 냄새를 맡는 그런 따위의 근시안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느긋이 물러서서 바라보는 아름다움에 늘 초점을 맞추어 왔던 것이다.
-어쨌든 한국인의 시선은 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시대 백자 항아리들에 표현된 원의 어진 맛은 그 흰 바탕색과 아울러 너무나 욕심이 없고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이 본바탕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
-비록 작가의식을 가지고 계산해서 낳아 놓은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도공들의 손길이 그들의 흥겨운 마음을 따라 움직였을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즉 모르고 만들어 낸 아름다움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조선 자기의 아름다움은 계산을 초월한 신기롭고도 천연스러운 아름다움
다른 이들에 대한 글도 썼는데, 장욱진에 대해서는 간추려진 인간상에 바치는 간절한 그의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많다고도 했다.<그림과 술과 나>라는 장욱진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40년을 그림과 술로 살았다.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 버릴 작정이다. 남는 시간은 술을 마시고. 옛말이지만 '고생을 사서 한다'라는 모던한 말이 있다. 이 말이 꼭 들어맞는다. 그림과 술로 고생하는 나나 그런 나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내 처나 모두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좋은데 어떡하나. 난 절대로 몸에 좋다는 일은 안 한다. 평생 자기 몸 돌보다간 아무 일도 못 한다."
평균수명이 60세에 못미쳤던 때라, 진하고 짧고 굵게 살았겠구나 싶다.
-"6.25 사변이 일어난 이듬해 3월, 서울이 다시 수복되자 비행기편에 겨우 자리 하나를 얻어 단신으로 서울에 들어온 것은 비바람이 음산한 29일 저녁 때였다. "
-중국의 항아리들처럼 거만스럽거나 일본 항아리들처럼 신경질적인 데가 없는 것이 우리 조선 항아리들이 지닌 특색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