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선 곳

[목포여행] 목포 옛 일본 영사관 갔다오는 길

sooien 2015. 5. 14. 21:45

(사진은 모두 K어린이의 작품들)


1. 

기차 탑승 시간까지 두어 시간도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근대역사관을 보러 갔다.

일단 목포역으로 간다.


2. 

목포 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조금 가면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거기서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나는 오렌지를 보았지만(25개에 마아너언? 여기가 캘리포니아여 목포여), 조카는 다른 풍경을 찍었다.

어른보다 조금 더 낮은 곳에서 보는 세상




어린이인 조카가 찍은 사진은 당연히 정교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뭔가 안정감이 있다. 

구성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뭔가 있어보인다. 

이번에 조카가 찍은 사진을 다른 친구에게 보여주니 네가 찍은 사진보다 훨 낫다고 한다.

신기한 일이다.

성질 더럽고 속 좁은 내가, 기분이 하나도 안 나쁘다. 




3.

목포역 건너편에 한국은행

한국은행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근대역사관에 가는 버스를 찾아보는 내게,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건넸다.

(터미널 앞에서도 한 아주머니가 어리버리한 내게 도움을 주려고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아주머니 : 어디 가실라고 그러요?

네에, 근대역사관이요.


아주머니 : 아...(갸웃)

그 이훈동 가옥, 그 성옥 기념관 있는 데 있잖아요.


아주머니 : 아...글믄(갸웃갸웃)

그니까 유달우체국 있는 데요.


아주머니 : 그람 뻐스를 저기 가서 타야 되는디

아 네, 감사합니당


아주머니 : 근디 걸어가도 되야요.

안 먼가요?

아주머니 : 슬슬 걸어가도 개아네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정보 전달 과정에서, 

중간중간 아주머니의 호기심이 드러나는데,

어디서 오셨는가? 서울서? 멀-리도 오셨소. 아 쉬는 날인게. 글제, 켸이티엑스를 타믄 금방 와블죠.

목포에 머하러 오셨는가? 목포럴 구경할라고 오셨어? 머슬 구경할 꺼시 있는가 모르건는디 하시며 생긋 웃는 그 표정이 참 다정했다.)


친절한 아주머니의 조언을 믿고 걸어갔는데 정말 슬슬 걸어가도 괜찮았다. 

왕복 15분?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던 구도심의 윤곽이 그래도 남아있어서 그런지, 블록의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리 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리 아프지도 않았고.


번화가를 지나고


또 지나고


길을 지나다가 중간중간 좀 심상치 않아보이는 곳들이 보였는데

이름은 매우 평범한데(심지어 촌스러울 정도로), 건물은 새로 지었거나 좀 괜찮아 보이는 곳들이 그랬다.

예를 들어 영란횟집. 그렇게 유명한 맛집이었는 줄은 몰랐다.

게다가 주차장도 역사의 흔적을 갖고 있는 곳

나중에 목포 맛집 탐방으로 다시 와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ajeok.i815.or.kr/i815/view_region/568



4.
슬렁슬렁 산책하듯 걸어서 도착했다.
목포 일본 영사관 건물이었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도서관으로 쓰이는 등 용도도 바뀌다가 
지금은 목포와 관련된 물품을 전시하는 등 목포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옛 일본 영사관 건물은 높은 곳에 지어놨는데, 올려다보라는 저급한 의도가 느껴져 짜징났다.



건물 뒷편으로 가면 방공호(일본 사람 안전하라고 조선 사람 시켜서 지은, 참내)도 있다.

깜깜했던 방공호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조카가 한 번 더 가자고 한다.

아니 안 가도 될 거 같은데 라고 했더니

조카가 차분한 표정으로 옅은 웃음을 지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이모 무서웠어요?

아니! (좋아, 자연스러웠어)


건물을 등지고 보면 

저 멀리 목포 여객선 터미널도 보이고

뭔가 많이 멀리 잘 보이는 거 같다

이렇게 내려다보려고 지었겠지 생각하니 짜징났다. 




그래도, 햇볕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고 날도 따뜻하고, (엄마가 딱히 보고 싶은 건 아닌데 빨리 서울 가고 싶다는 센 척하는) 조카가 옆에 있어서 좋았던 산책이 그렇게 끝나갔다.